동문과의 만남
나운성 동문(UST-생명연 스쿨 시스템생명공학 전공, 2015년도 졸업)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존재, 바이러스. 정체불명인데다 확산속도도 빨라 한번 발생하면 근절이 어렵죠. 나운성 동문은 이 습격 속에서 오늘도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가 진로를 바꿀 정도의 ‘사명감’이 대체 뭘까 궁금했던 것도 잠시. 나 동문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랍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국내 전역을 휩쓸었던 2009년. 전국 닭, 오리 농장에선 오랫동안 한숨 소리만 들렸습니다. 당시 공중방역수의사로 군복무 중이었던 나 동문은 아직도 그 현장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수의학과 학생들은 수의사가 부족한 격오지 등에서 가축전염병 예방과 관리 등 방역업무를 3년간의 군복무로 대체하는데, 제가 복무하던 평택에서 구제역,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해당 농장에서 만난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힘들어요. 하지만 동시에 동물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여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하죠.”
수의학 전공이었던 그는 일찍이 캐나다 동물병원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전공을 잘 살린다면 임상수의사,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과 미래가 보장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군제대 후 돌연 진로를 바꿨습니다. 3년간 동고동락했던 ‘바이러스’를 택한 거죠.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는 연구를 하겠단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제 그는 보다 ‘최전선’에서 동물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동문이 UST를 만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이자 지도교수였던 송대섭 교수의 추천이 그 연결고리였거든요. 사실 그의 머릿속엔 다른 후보군도 없었습니다. 학부생 시절 봉사장학생으로 일찍이 실험실 생활에 몸 담아봤던 터라 ‘정부출연연구원과 연계’됐다는 점이 오히려 ‘유레카!’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2011년 UST-생명연 캠퍼스에 입학했을 때, 그의 수의학과 동기들은 하나둘 박사학위를 받고 있었다고 해요. 혹여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하는 두려움은 없었는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지만, 오히려 나 동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땐 UST가 어떤 곳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하지만 캠퍼스를 처음 둘러보던 날 저는 고민 없이 결정했습니다. 국가연구소대학원이다보니 연구실험시설부터 눈에 띄게 차이났거든요.”
게다가 출연연의 전문인력들과 동고동락하며 트렌디한 국책과제를 끊임없이 수행할 수 있어, 더욱 폭 넓게 배울수 있다는 점도 UST를 결정하게 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뒤늦게 불탄 학구열로 나 동문은 UST 석박사 통합과정을 3년 반 만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결과까지 늦는 건 아니란 걸 당당하게 보여준 셈이죠. UST 재학 시절은 어떤 의미였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바쁘고 또 바빴던 시간’이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여유가 물씬 풍겼습니다.
“생명공학연구원에 있으면서 밤낮 연구하고, 매일 전국 실험 농장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초기에는 말에서 인플루엔자를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했던 연구과제 중 하나예요. 국내 최초로 한국형 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이후 나 동문은 백신 개발에도 성공, 2014년엔 산업체 기술이전까지 이어져 기초연구자에게 최종목표라 할 수 있는 ‘실용화’의 가능성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 가능성은 작년에도 빛을 발했어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30분 내로 감별해 낼 수 있는 감별진단시스템을 연세대 화학공학과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해낸 거죠. 그는 4년 전 즈음 생명연에서 가장 대규모 프로젝트로 꼽히는 ‘글로벌프론티어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연구를 시작해, 작년 8월 국제적인 학술지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표지 눈문으로 게재되는 쾌거를 얻었습니다. 이 연구결과 역시 기술이전 돼 상용화 단계에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의 땀과 열정이 녹아 있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은 최근 나 동문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바로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바이러스학 조교수로 최종 임용됐다는 희소식. 뒤늦게 진로를 바꾸면서 매순간 쉼 없이 달렸을 그의 소감은 생각보다 담담하고, 역시나 진솔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운도 좋았다’ 말합니다. UST 특성상 외국 주요기관들과의 MOU가 많이 맺어져 있어 심도 깊은 연구나 해외 실험에 제약이 없었거든요. 실제로 나 동문은 말이나 낙타 실험은 몽골에서, 고병원성인플루엔자 실험은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국내에선 동물을 구하는 것이 어렵고, 고병원성인플루엔자 실험은 등록된 기관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UST는 ‘참 든든한 존재’라 말하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