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과의 만남
이가경 교수 (UST-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쿨 바이오메디컬 융합전공 박사 졸업, 현 세종대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 조교수)
요즘 소셜 미디어를 떠도는 대학원생 밈 중 하나가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라고 합니다. 대학원생으로서 가지는 불안함이 크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이에 이가경 동문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막연히 고민하기 보다는 현재 하고 있는 연구 활동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고민들을 먼저 경험했던 선배로서 공감이 갔던 이가경 동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UST- KIST 스쿨 박사과정에서 바이오메디컬 융합전공에 생물화학을 세부전공으로 했습니다. KIST에서는 생체분자인식연구센터에서 대사체학이라는 분야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대사체학은 생명 현상을 큰 그림으로 살펴보는 시스템 생물학 분야 중 생명체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적인 영향을 가장 잘 특성화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환경적인 영향이라고 하는 것은 질병이 될 수도 있고, 약물, 음식 혹은 치료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요. 대사체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생체 시료 내 대사의 변화를 밝혀냄으로써 체내 작용 기전을 밝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어떤 질병의 초기 진단 마커 혹은 약물의 약리, 독성 기전 등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세종대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는 대사체학의 응용 분야 중에서도 다양한 성분과 체내 대사체의 복잡한 작용으로 인해 작용 기전을 밝히기 어려운 천연물 분야의 연구입니다.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는 미래 식량 산업의 핵심이 되는 다양한 천연물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천연물 유래의 소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제가 하는 대사체학 연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학과 내 다양한 분야의 대학원생이나 학부학생들에게 대사체학을 응용하고 융합하여 연구를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2023년도부터 대사체학의 기본이 되는 분석화학과 관련해 질량분석학과 이를 응용한 연구 분야에 대해 수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KIST와 경희대 두 곳에서 석사과정을 수행하다가 UST에 대한 소개를 받게 됐습니다. 지도교수님이신 정병화 박사님이 UST교원으로 계셔서 이곳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2015년 당시만 해도 UST는 외국인 학생의 수가 많아서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대학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후로 한국 학생들이 많이 늘어났고, 또 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높은 것을 알게 되면서 박사과정을 이곳에서 시작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소속된 두 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듣고 행정처리를 해야 하는 학연생보다 연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UST의 환경이 저에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나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연구 쪽으로 내 생각을 펼치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싶은데 석사과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시 마음을 먹고 UST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이 연구 활동에 더 열심히 매진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아요. 또한 연구자로서 갖춰야할 역량을 박사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에요. 아마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을 텐데요. 다른 친구들은 다 직장생활 하는데 나는 아직도 공부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뒤처져있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UST에서 보내는 시간을 막연히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나 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연구 영역에서의 하나의 직업군에 속해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졸업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KIST 스쿨 졸업식에서는 학생과 지도교수님이 같이 단상에 올라가 한명 한명에게 수료증과 학위 이수증을 수여해주시며 성대한 졸업식을 열어주셨는데요. 그 순간 학위를 하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스쳐가면서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위를 하며 결혼과 두 아이 출산을 모두 겪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날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아이가 함께 축하해준 졸업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출산 휴가 등 여러 가지 일들로 귀찮게 해드렸던 KIST스쿨 팀 선생님들께 감사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UST의 가장 큰 강점은 아무래도 학생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대학교와는 달리 대학원생들만 있기 때문에 일반 대학교에서 학부생들에게 분산될 수 있는 관심과 지원이 대학원생들에게 모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느낀 UST는 행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학비, 해외연수, 해외학회 발표지원 등 늘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더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학교의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에 저도 보답하고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해서 UST를 조금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현재 UST는 제가 입학을 했던 2017년도에 비해 확실히 많은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저는 질량분석 기반의 대사체학을 수행하여 생체 내 질병 및 약물에 대한 대사 기전을 규명하는 연구를 주로 했습니다. 대사체학은 어떤 외부 영향에 대한 생체 대사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비표적 대사체학(non-targeted metabolomics)과 특정 가설의 검증을 위해 관심이 있는 특정 대사 관련 대사체를 정량 분석하는 표적 대사체학(targeted metabolomics)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수행했습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수행했던 연구는 비표적 대사체학으로 다양한 질병 (다발성 경화증, 비만, 천식, 아토피 피부염 등)에서 다양한 생명체(인체, 동물, 세포시료)의 생체시료 (혈액, 조직, 뇨 등)를 분석해 체내에서 질병 및 약물 관련으로 나타나는 대사 변화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연구였습니다. 비표적 대사체학은 주로 가설의 검증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더 깊은 주제로 연구를 하시는 연구자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관심 대사체 위주로 분석을 수행하며 함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과제 수행에 있어서는 천연물과 관련한 대형 국가 과제를 오랜 시간 수행하면서 대사체학을 천연물 분야에 적극적으로 적용, 응용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현재 학과에서 연구 분야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 입학 시절부터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부 시절에도 방학이면 틈틈이 다양한 기관과 연구실에서 여러 분야의 연구를 경험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학년까지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나서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확하고 확실한 결과만을 보여주는 질량분석이라는 분야가 제 성격과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기기분석을 시작으로 대사체학을 배워나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사체학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질병이나 약물 등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나가야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식이 확장되고 응용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좋았습니다.
‘소통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연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연구 주제 및 분야에 대해 수용하고 협력하려는 모든 과정들이 ‘소통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연구를 활용해서 다양한 주제의 연구에서 기초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계기로 협력하여 더 깊고 넓은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게 제가 연구를 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인데요. 앞으로도 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분들과 협력하면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해 나가고 싶습니다.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특히 연구라는 분야에서는 운이 좋게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탄탄하게 연구자로서 기반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은 학부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학생들도 많고 저처럼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학생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막연한 조급함과 불안함 때문에 힘든 순간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학위과정이 길어질수록 그런 심리는 가중될 수밖에 없는데요. 자신을 믿고 성실하게 묵묵히 연구하다 보면 여러분이 하셨던 충분히 옳은 선택에 대한 보상을 꼭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은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다면 먼저 연구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박사님들과 연구 외에도 이런 저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모든 박사님들이 공감과 위로, 그리고 때로는 해결방향도 제시해주심으로써 큰 도움을 주실 겁니다.